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中에서 :: 2008. 6. 13. 12:34

이미 이 시험은 유희가 아니라 진작도 나는 그렇게 말해 왔지만,

이제야말로 이 시험은 내가 반드시 풀어야 할 삶의 과제이며
 
넘어야 할 운명의 산맥이다.

내 정신을 학대하는 압제자이며 나를 가두는 벽이며 이것을
 
극복하지 않고는

결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사슬이다.

이 시험은 너무 깊이 들어와서 되돌아갈 수 없는 미로(迷路)이며

나는 도망칠 권리조차 없는 필사의 전사(戰士)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체의 잡념은 버릴것이다.

상상력의 과도한 발동은 억제할 일이다.

음과 색에 대한 지나친 민감을 경계할 것이다.

언어와 그것의 독특한 설득 형식에는 완강할 것이다.

감정의 분별없는 희롱, 특히 그것의 왜곡이나 과장은 이제 마땅히 경멸할 일이다.


시계의 초침 소리를 듣는 데 소홀하지 말아라.

지금 그 한 순간 순간이 사라져 이제 다시는

너에게 돌아올 곳 없는 곳으로 가버리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라.

한 번 흘러가버린 강물을 뒤따라 잡을 수 없듯이 사람은

아무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날 수 없다.

더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초침 소리에 관대할 수 없으니,

어여된 최대치는 이미 낭비되고 말았으니.


너는 말이다.

한번쯤 그 긴 혀를 뽑힐 날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그 실천은 엉망이다.

오늘도 너는 열여섯 시간분의 계획을 세워놓고 겨우 열 시간분을 채우는 데 그쳤다.

이제 너를 위해 주문을 건다.

남은 날 중에서 단 하루라도 그 계획량을 채우지 않거든 너는 이 시험에서 떨어져라.

하늘이 있다면 그 하늘이 도와 반드시 떨어져라.

그리하여 주정뱅이 떠돌이로 낯선 길바닥에서 죽든 일찌감치 독약을 마시든 해라...